특집다큐 1,2부
귀신고래를 기다리며(R특집)
귀신고래울음소리
연출자르포
귀신고래갤러리
 

러시아 에스키모들의 귀신고래 사냥
러시아 에스키모들의 귀신고래 사냥
우리가 라브렌티야 마을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해안에 누워있는 거대한 귀신고래의 주검이었다. 주민들 얘기로는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사냥한 고래라고 하는데 이미 마을 주민들이 먹을 만큼 껍질과 살코기를 다 뜯어가고 내장과 뼈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귀신고래 몸에 기생해 사는 따개비라던가 기생충(lice(이))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곳 러시아 에스키모들은 국제포경위원회(IWC)로부터 생존포경이라는 명목으로 정식허가를 받아 귀신고래를 사냥한다. 올해 받은 할당량(quoter)은 120여 마리.

이들에게 있어 고래고기는 여전히 중요한 식량자원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western food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mss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은 이웃 마을인 로리노에서 고래축제가 열렸다. 축제전에는 반드시 고래를 사냥하기 때문에 우리 촬영팀도 사냥꾼들을 따라 나섰는데, 아뿔싸, 고위관리인 듯한 사람이 와서 고래촬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모스크바에서 온 IWC위원인데 2년전부터 고래사냥에 대한 TV촬영이 금지됐다고 했다. 급기야는 해안경비를 맡고있는 군인들까지 우리를 막아서더니 카메라를 빼앗을 기세였다. 고래사냥 촬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민들 얘기로는, 과거엔 전통방식인 창으로만 고래를 잡았으나 요즘엔 주로 총을 쏴서 잡는데 무려 40발이 넘는 총을 쏴야 고래가 죽는다고 했다. 사냥배가 나간지 거의 7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배가 돌아왔다.


해안엔 이미 고래고기를 담아갈 바께스나 큰 대야같은 걸 가지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래가 뭍으로 올려지고 사람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각자 가자고 온 칼로 고래고기를 베가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어떤 청년은 주머니 칼로 고래고기를 한점 베어 내게 주었다. 나도 고래고기라면 부위를 안가리고 잘 먹지만 웬걸, 귀신고래의 생껍질은 너무 딱딱했고 맛도 없어 그냥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어른, 아이,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잘도 배어먹었다. 이들은 고래부위 중에서 지방이 두터운 껍질을 가장 좋아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래고기를 돈을 받고 거래하는 일은 일체 찾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포경이기 때문에 고래고기의 돈거래는 금하고 있었다. 많지도 않고 제 먹을 만큼만 베어서 그릇에 담아가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서너시간이 지나자 고래는 머리부분과 뼈만 남게 됐다. 그 먼 바닷길을 달려온 귀신고래는 이곳 추코트에서 제 살코기로 그렇게 보시(布施)를 하고 있었다.
 
수수께끼같은 한국귀신고래의
회유경로

캘리포니안 귀신고래의 회유경로가 아메리카대륙의 해안선을 따라서 오가는 단조로운 길임에 비해, 한국귀신고래의 회유경로는 복잡하다. 여름에 오호츠크바다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귀신고래는 9월말경부터 남하회유를 시작한다. 회유의 첫번째 길은, 연해주해안을 지나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다. 두번째 길은 일본열도의 동해안이고, 세번째 길은 일본 열도의 서쪽해안이다.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가 마지막으로 잡힌 것이 1966년 이었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지난 77년 울산의 방어진 앞바다에서였다. 그 이후로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봤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정부에서는 1962년에, 귀신고래가 회유해 오는 바다를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정한 바 있다.
{귀신고래(克鯨)회유해면}표지석이 지금도 울산의 장생포에 서있다. 그런데, 우리를 널라게 하는 것은, 우리바다에서 완전히 사라진 귀신고래가 최근까지도 일본바다에서는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원양수산연구소 히데히로 가또 박사에 의하면, 1959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바다에 귀신고래가 나타난 것이 모두 11차례나 된다고 한다. 작년엔 동경에서 남쪽으로 100여km 떨어져 있는 시즈오카해변에서 발견됐는데 그곳 방송국에서 촬영한 화면이 전국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전에는 일본의 수중촬영전문가인 코지 나카무라씨가, 동경의 남쪽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수중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까지 촬영하기도 했다.
나는 가또 박사와 함께 작년에 귀신고래가 나타났다는 시즈오카해변을 직접 가봤는데, 해안에 바싹 붙은 찻길과 주택들, 해변의 테트라포트하며 우리 바다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귀신고래가 이 바다에만 나타나는 것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과거 한국귀신고래의 주된 회유경로는 분명 한반도 동해안이었다. 1890년부터 1966년까지 포획된 한국귀신고래의 수가 모두 1,750마리인데, 그 중 97.4%에 해당하는 1,704마리가 북한의 장전과 울산에 이르는 한반도 동해안에서 잡혔다.(*[귀신고래의 현대포경역사-가또,카수야 공저] 현재 한국귀신고래의 번식장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1914년에 펴낸 Andrews의 논문에는 한국귀신고래의 번식장이 한반도의 남해안이라고 적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Andrews가 귀신고래를 잡아보니 대부분의 암컷들이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임신상태와 회유속도를 감안할 때, 한국남해안에서 출산할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80년대에 중국의 하이난섬 해변에서 죽은 귀신고래가 발견되면서 그곳이 새로운 번식장일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한국바다에서의 귀신고래 발견은 이처럼 절박한 상황이 돼버렸다. 사실 한국귀신고래의 정확한 회유경로를 알려면 북한쪽의 정보가 필요하다. 왜냐면 귀신고래가 회유를 해올 때는 반드시 북한의 동해를 통해서 남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다큐를 제작하면서 할 수 있는 경로를 통해 북한측과 접촉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지난 88년 가을에 베링해의 얼음속에 두 마리의 귀신고래가 갇힌 적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먼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결국엔 당시 쏘련의 쇄빙선이 얼음을 깨고 물길을 만들어 두 마리의 귀신고래를 구해냈다. 당시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88올림픽보다 더 큰 화제가 됐는데, 이 일이후로 미.소냉전이 점차 누그러졌다. 지금도 서양인들은 얼음속에 갇힌 귀신고래를 구출한 이 사건을 두고 데땅트의 시작으로 간주할 정도다. 글쎄, 한국귀신고래가 푸른 동해를 따라 한반도의 해안을 유유히 헤엄쳐 내려올 때, 통일도 함께 올까?
위기의 한국귀신고래
러시아 사할린섬에서 한국귀신고래의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 해양포유류 연구소의 에이미 랭 박사는 한국귀신고래의 유전적인 특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사실을 밝혔다. ‘한국귀신고래의 유전인자는 캘리포니안 귀신고래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한국귀신고래가 다시 나타났을 때, 많은 학자들이 길잃은 캘리포니안 귀신고래가 우연히 오호츠크 바다로 흘러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저희들이 암컷의 유전인자를 분석한 결과, 완전히 달랐다. 결국 한국귀신고래는 유전적으로는 캘리포니안 귀신고래와 엄연히 구별되는 별개의 종(種)이다.”이 연구결과는 금년에 이탈리아 쏘렌토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발표돼 전세계 많은 고래연구자들로부터 굉장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랭 박사는 한국귀신고래가 유전적인 측면에서 또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한국귀신고래는 현재 수컷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다. 전체 조사대상 가운데 수컷은 60%정도인데, 새끼들의 경우, 수컷비율이 무려 77%에 이른다. 암컷을 통해서만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컷이 많다는 것은 번식을 통한 개체수의 성장에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한국귀신고래의 발견숫자가 매년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그 개체수 회복은 현재 그리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귀신고래의 번식장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필자의 눈으로도 확인했지만 고래서식지에서 10km쯤 떨어진 바다엔 현재 거대한 시추선이 떠있다. 석유개발회사인 사할린에너지사(社)가 2004년 4월부터 이곳에서 본격적인 원유생산을 시작했다. 그래서 이곳엔 현재 대형유조선의 왕래도 빈번하다. 우리는 사할린의 노글리키에 있는 사할린에너지의 사무실에서 장차 개발예정지라고 표시한 지돌르 봤는데, 공교롭게도 가스와 석유매장지가 한국귀신고래의 서식지와 거의 80%쯤 일치하고 있었다. 이곳을 오가는 대형유조선들의 수중소음도 고래에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만약 대형 원유누출사고라도 난다면 이곳의 고래서식지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한국귀신고래가 먹이를 먹으러 오는 유일한 장소인 필튼만의 오호츠크바다는 귀신고래가 안식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위태로운 곳이다.
한국귀신고래를 기다리며
과거 포경선원들은, 한국귀신고래가 남쪽으로 내려올 때는 항상 동지쯤에 울산앞바다를 지난다고 했다. 2003년 12월24일부터 2주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팀은 포항의 호미곶 등대에서 고래관측을 했다. 그러나 귀신고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당시 김장근 연구관은,“귀신고래는 연안을 붙어서 이동하는 고래인데, 우리 바다에 선박들이 너무 많이 다닌다. 고기잡이하는 배들도 너무 많고 해변의 그물도 고래에겐 엄청난 장애물이다.”이렇게 우리 바다의 실정을 아쉬워했다. 2003년 한해, 우리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서 죽거나 선박과 충돌해서 죽은 고래의 수가 무려 280마리가 넘었다. 러시아 에스키모들의 포경쿼터량보다 두배가 넘는 숫자다. 과거 한국귀신고래가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냈던 포항과 울산, 그리고 부산앞바다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선박왕래가 가장 많은 바다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귀신고래가 이 복잡한 바닷길을 헤치고 다시 우리 동해를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래서 그 이름도 귀신아닌가!
글쓴이: 이영훈 PD(울산MBC TV제작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