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큐 1,2부
귀신고래를 기다리며(R특집)
귀신고래울음소리
연출자르포
귀신고래갤러리
 
멕시코의 고래암벽화
산 이그나시오 라군에서 육지쪽으로 보면 길다랗게 산맥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맥이 바로 산 프란시스코 산맥인데, 산 이그나시오 마을에서 차로 두시간쯤 달리면 이 산속의 작은 마을, 산타 마르타 마을에 당도한다. 이 마을에서 당나귀를 타고, 마치 미국의 그랜드 케년을 쏙 빼닮은 깊은 협곡을 무려 7시간을 가면 커다란 동굴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동굴의 벽면에 무수히 많은 채색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크기가 무려 5m를 넘는 사람그림, 사슴그림, 새그림 등, 500여점이 넘는 그림들을 이 하나의 동굴에서 만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5m정도 되는 커다란 고래그림이었다. 고래는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듯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고 위로 향하고 있다. 이 산속에 웬 그림이? 우리를 안내한 고고학자 마르띤 씨는, “이 그림들은 지금부터 3,500년전,‘꼬치미스’라 불리는 이곳 원주민들이 그렸는데 고래는 그들에게 중요한 식량이기도 했지만 여기에 그림을 그린 걸 보면 먹거리 이상의 종교적인 숭상대상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고 했다. 실제 여기 고래그림에는 고래꼬리 자리에 사람발이 그려져 있었다. 고래를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다까지 직선거리로 약 30km쯤 되지만 고래는 그들의 생활권내에 있었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울산에도 고래암각화가 있다.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그것이다. 이곳에 무려 60점이나 되는 고래그림이 새겨져 있다. 단일 암각화로는 세계최대의 고래암각화다. 그런데 여기 새겨진 고래그림들은 실제 고래의 특징들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귀신고래의 경우 실제로 짧은 배주름이 3~4개 정도인데, 반구대암각화의 가장 가운데에 보면 4줄의 배주름이 정확하게 그려진 귀신고래가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다. 반구대 그림 중에 아래를 향하고 있는, 깊은 골이 여러개 패인 고래그림이 있는데 이 고래는 혹등고래다. 실제로 엄청난 물과 함께 먹이를 삼키는 혹등고래는 열줄이 넘는 배주름이 아주 깊게 꼬리까지 이어져 있다. 바다에 나가서 고래를 직접 보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에는 새끼를 등에 업고가는 고래그림이 있다. 어떤 이는 뱃속에 새끼를 밴 고래라고 말하기도 하나 국립수산과학원의 김장근 박사의 의견은, “고래가 새끼를 낳고나면 얼마간은 이렇게 새끼를 등위에 올려놓고 다닌다. 왜냐하면 새끼가 보다 쉽게 숨을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라는 것이다. 아울러 김박사는 이 그림을 통해서 볼 때 과거 古울산만이 귀신고래의 번식장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진 때는 지금부터 3,000년전, 그 때는 빙하기 후반기로 지금보다는 해수면이 훨씬 높았다. 현재의 울산시 대부분이 바다였는데 당시 古울산만은 멕시코의 리에브레 라군처럼 귀신고래가 번식하기 좋은 거대한 라군이 아니었을까. 그 증거로 울산만과 인접한 개운포의 세죽패총에서는 지난 2000년 발굴 당시에 상당량의 고래뼈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미역먹는 한국귀신고래
예나 지금이나 울산은 자연산 미역의 본고장이다. 그런데 지금도 울산의 장생포에 가면, 옛날에 고래배를 갈랐더니 뱃속에 미역이 들었더라는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요즘도 산모에겐 미역국을 먹이는데 이것이 고래가 미역을 먹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우리는 자료조사과정에서 고래뱃속에 미역이 있더라는 옛문헌을 찾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기예(技藝)편에 보면, “....我東傳言。海?人?水。爲新産鯨所?呑。入鯨腹。見鯨之腹中。海滯葉滿付。臟腑惡血。盡化爲水。僅得出腹。始知海帶爲産後補治之物。傳於世人。始知良驗。以此以後。仍以爲俗....”라는 말이 있다.

약술하면, ‘사람이 고래뱃속에 들어가 보니 미역이 가득한 가운데 악혈이 녹아 물이 돼 있더라, 이후로 사람들이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실제 울산 장생포에서 귀신고래 연구를 한 Andrews의 논문을 봐도, 죽은 고래의 뱃속에는 해조류가 녹아 젤라틴이 돼있더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민족이 산후에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게 된 연유가 귀신고래의 섭생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이 결코 헛된 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귀신고래는 과거 미역이 많았던 古울산만에서 번식을 하며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바다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해변에서 킬러훼일을 보다
3월말쯤이면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는 멕시코의 라군지역을 떠나 북으로의 이동을 시작한다. 이들이 5월쯤에 도착하는 곳이 미국의 캘리포니아해변과 캐나다 밴쿠버섬 등이다. 우리가 이동중인 귀신고래를 본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의 센시미언이라 불리는 작은 해변이었다. 미국 해양포유류연구소의 페리만 박사가 북으로 이동 중인 귀신고래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는데, 그는 아주 재밌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귀신고래가 이동할 때는 반드시 새끼를 해안쪽에 두고 이동한다는 것이다. 바깥바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박사와 함께 귀신고래를 지켜보고 있던 중에, 해안에서 1km쯤 떨어진 앞바다에 날카로운 모양의 긴 지느러미를 볼 수 있었다. 바로 범고래(킬러훼일)였다. 범고래는 귀신고래의 천적이다. 이들은 떼로 다니면서 주로 귀신고래의 새끼들을 공격하는데 이 맘때가 귀신고래에겐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범고래가 나타나자 귀신고래들은 해안가까이 더 바싹 붙어서 얕은 바다에서 부서지는 파도사이를 마치 서핑하듯 지나갔다. 페리만 박사는 부숴지는 파도소리가 귀신고래의 울음소리나 신호음을 감춰준다고 했다. 페리만 박사를 포함한 많은 미국의 과학자들이 귀신고래를 예의주시하며 관찰하는 이유는 귀신고래의 숫자가 바로 지구기후변동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98년에는 관찰된 귀신고래의 숫자가 갑자기 격감했는데 그 이유로, 그 전해인 97년에 북극의 얼음들이 아주 천천히 녹아서 귀신고래들이 주요 먹이장까지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어미들이 충분히 먹지 못해 그 해에 새끼를 많이 배지 못했고 이듬해인 98년에 귀신고래숫자의 격감으로 연결된 것이다. 미국 학자들은 이런 현상들을 모두 모아서 태평양 전체의 생태변화지도를 그리고 있었고 기후변화의 예측모델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귀신고래의 별난 먹이섭취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들은 8월이 되면 얼음이 완전히 녹아있는 베링해나 아니면 더 북쪽인 축치해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 촬영팀도 2박3일이라는 긴 이동 끝에 베링해와 접해 있는 러시아 추코트반도의 작은 도시, 라브렌티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 표현으로는 보트를 타고 미국땅 알라스카까지 가서 햄버거를 사먹고 온다고 할 정도로 알라스카가 가까운 곳이다. 귀신고래들은 이곳에 오로지 먹기 위해 온다. 귀신고래의 먹는 방법은 고래 중에 가장 독특하다. 다른 고래들이 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를 먹는데 반해, 귀신고래는 바닥을 입으로 헤집어서 흙속에 사는 앰피포더라고 하는 작은 갑각류들을 먹는다.


마치 쟁기질 하듯 입으로 한입 가득 흙을 물고는 수염판 사이로 흙은 뱉어내고 작은 갑각류들을 걸러서 먹는 것이다. 대량으로 물을 들이키지 않아도 먹이 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귀신고래의 배주름은 그 수가 3~4줄에 불과하고 또 주름길이도 짧다. 그런데 귀신고래가 바닥의 흙을 한번 먹을 때마다 바닥에는 깊이 40cm, 길이 4m의 구덩이(whale pit)가 파지는데, 이것이 북극바다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