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큐 1,2부
귀신고래를 기다리며(R특집)
귀신고래울음소리
연출자르포
귀신고래갤러리
 
멕시코의 캘리포니안 귀신고래
2004년 2월말경, 우리는 멕시코의 서쪽, 캘리포니아반도를 찾았다. 남으로 길게 뻗은 이 반도의 중간쯤에 세 개의 큰 라군(석호)이 있다. 리에브레 라군(스캐몬 라군), 산 이그나시오 라군, 그리고 막달레나 라군인데 이 라군들이 귀신고래가 겨울에 번식을 위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먼저 우리는 세 곳의 라군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넓은 리에브레 라군을 찾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지 10분도 채 안돼 고래들이 우리 보트옆에서 불쑥불쑥 솟아올라 물을 뿜었다. 정말 물반 고래반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그야말로 고래천국이었다. 간혹 돌고래가 물위로 뛰어는 것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귀신고래였다. 그것도 어미와 새끼가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눈으로 봐서는 한국귀신고래와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사는 장소만 다르지 그 형태나 습성은 똑같은 귀신고래라는 것이 현재 연구자들의 결론이다.(하지만 유전인자는 차이가 있다(후술))
우리는 이곳 생태연구자들과 함께 고래수를 세는 작업에 함께했는데, 보트가 일정한 방향을 달리면서 보트에서 등을 맞대고 앉은 두 연구자가 보트의 좌우측에 보이는 모든 고래를 세는 것이었다. 4시간 정도 달린 후에 우리는 라군의 맞은편 해안에 닿았고 거기서 관찰한 고래숫자를 합산했는데 모두 538마리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과거 포경하던 우리 포수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실제 이 라군에서 고래를 집단적으로 사냥하던 인물이 있었다.1890년 경에 미국 포경선 선장 스캐몬이라는 사람이 이 라군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여기서 짧은 시간에 엄청난 고래들을 아주 쉽게 사냥했다. 뒤이어 소문을 듣고 다른 포경선들도 캘리포니아반도의 라군들을 샅샅이 뒤져 귀신고래들을 사냥했는데 이로 인해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는 20세기초까지 거의 멸종상태에 빠졌다. (이때쯤 Andrews가 한국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다시 발견하고는 멸종된 귀신고래를 다시 봤다고 그의 논문에 적었다.) 하지만 그 이후,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고래기름이 더이상 필요치않은 시대가 되었고 또 바다포유류를 보호하자는 환경보호의 생각들이 대두되면서 고래숫자는 다시 늘어나게 됐다. 물론 귀신고래의 회유경로상에 있는 멕시코, 미국, 캐나다 등 이들 국가들이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귀신고래보호활동을 꾸준히 펼쳐왔고 또 제각기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자는 법을 만들어 엄격하게 고래를 보호해왔던 것도 귀신고래를 다시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리에브레라군의 관경(觀鯨)산업
이곳 리에브레 라군과 남쪽으로 두시간쯤 떨어져 있는 산 이그나시오 라군은 일년중 12월과 3월 사이에는 고래를 구경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여기서는 고래를 먼발치서 구경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질 수도 있다. 우리가 리에브레 라군에서 관경보트를 탔을 때, 실제 어미고래와 새끼고래가 우리 보트 가까이로 접근해 왔다. 특히 새끼고래는 호기심이 많아 보트바닥에 얼굴을 들이받기도 하고 머리를 물밖으로 내밀어 마치 보트에 탄 사람을 구경하듯 눈을 껌벅거리기도 했다. 나도 새끼고래가 머리를 내밀 때 재빨리 만져봤는데 정말, 너무 부드러운 피부였다. 대형포유류 가운데 고래의 피부가 가장 약하고 또 부드럽다고 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쓰는 고무지우개같은 촉감이었다. 우리 보트를 운전했던 현지 멕시코인은 제 모자를 벗어 고래머리 위에 씌웠다가 사진까지 찍고는 다시 쓰곤 했다. 그런데 고래구경이 언제나 안전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촬영했던 그림에도 찍혀있지만 어른 귀신고래가 그 큰 꼬리로 우리 보트를 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보트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래로 인해 불상사가 발생했다. 고래를 촬영하던 중에 어미고래 한마리가 불쑥 우리 보트앞에서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리 보트앞쪽이 번쩍 위로 들려 올려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왼쪽으로 내동댕이 쳐졌는데....보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넘어지고 ..... 정말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특히 보트 맨 앞에서 촬영하던 우리 카메라맨(김능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넘어지면서도 카메라는 손에서 절대 놓지않는 바람에 온몸으로 뱃전에 부딪힌 것이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다. 카메라도 뷰파인더가 흔들리긴 했지만 촬영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지인 얘기로는 가끔 고래가 장난삼아 꼬리로 보트를 치기는 하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자기도 처음이라고 했다. 이후로는 고래가 우리보트로 접근하기만 해도 사실 겁부터 났다. 어른 귀신고래의 길이가 보통 14~15m정도, 반면 우리 보트는 고작 5m정도이니 큰 고래가 우리 옆에 붙으면 그 위압감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귀신고래의 짝짓기
리에브레 라군에서 촬영을 마친 우리는 남쪽으로 차로 두 시간쯤 거리에 있는 산 이그나시오 라군을 찾았다. 그런데 해변에서 촬영준비를 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바다에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러더니 고래꼬리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수면으로 고래의 격렬한 움직임이 보였다.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고래가 싸움을 하나?’한참을 보고 있는데 연분홍색의 원뿔 같은 것이 쑥 하고 올라온다. 우리는 일제히 “고래의 생식기다! 맞지!”하고 외쳤다. 뷰파인더를 통해 한껏 줌을 댕겨서 보고 있던 우리 카메라맨은 “무지하게 큰데요”그런다. 동행했던 라파즈대학의 마우리시오 박사는, “고래의 짝짓기는 보통 20~30분 정도 걸리는데, 항상 암놈 한 마리에 숫놈이 두마리 이상 따라붙는다.
굉장히 격렬해서 이 때 암놈 옆에 있던 새끼가 죽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자세히 보니 두 세마리의 고래가 엉켜 있었는데 꼬리로 격렬하게 수면을 치기도 하고 지느러미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동안 그러더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 찍은 그림을 수차례 확인하면서 신기해 했었다. 귀신고래의 짝짓기를 촬영한 것은 우리 제작팀의 소중한 성과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