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큐 1,2부
귀신고래를 기다리며(R특집)
귀신고래울음소리
연출자르포
귀신고래갤러리
한국귀신고래를 보다
러시아 사할린섬 북동쪽, 필툰만에 아침이 밝았다. 때는 2004년 8월21일, 이곳에서 고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필툰만의 좁은 해로를 벗어나 오호츠크해로 나섰다. 과연 한국귀신고래를 볼 수 있을까? 수면은 잔잔했다. 물빛은 그리 맑아보이진 않았으나 햇빛이 물에 반사돼 반짝거렸다. “와 안보이노?”나는 조급한 마음에 이곳에서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활동중인 국립수산과학원 소속의 김현우군에게 물었다.“조금만 기다려 보이소, 이제 곧 나타날 깁니다.”보트에 함께 탄 외국인 과학자들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래를 찾는다.
그러기를 한 30분, 과학자 한사람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일제히 그곳을 쳐다봤는데 분수처럼 솟아오른 고래의 분기가 햇빛에 반사돼 한순간 영롱한 무지개가 되었다.
“야~고래다!”절로 탄성이 나왔다. 보트를 고래쪽으로 몰아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고래가 숨을 쉬러 물위로 올라올 때마다 “푸우~”하고 거센 숨소리가 고요한 바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검은 피부에 회색반점이 무수히 많은 귀신고래 특유의 몸빛깔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그래, 이게 바로 귀신고래다. 옛날 우리 동해를 구비치던 그 귀신고래를 오늘, 오호츠크바다에서 다시 만났구나! 이놈아 반갑다!’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시 나타난 한국귀신고래는
해양포유류사의 기적

귀신고래는 전세계에 현재 2계군이 남아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있는 캘리포니안 귀신고래, 그리고 태평양 서쪽의 한국귀신고래다.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는 현재 개체수가 25,000마리에서 30,000마리 정도다. 그에 비해 한국귀신고래는 지나친 포획으로 1960년대 이전에 이미 거의 멸종된 걸로 알려졌다. 지난 1977년 울산 방어진 남동쪽 3km 해상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우리 바다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귀신고래는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러시아 사할린섬 필튼만의 앞바다에 한 두 마리의 귀신고래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해마다 조금씩 늘어났다. 급기야 지난 95년, 러시아-미국 해양포유류 연구자들이 정식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한국귀신고래가 세계해양포유류사에 재등장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진판독을 통해 밝혀진 한국귀신고래의 숫자는 고작 100여마리. 이곳 과학자들 얘기로는 덩치 큰 고래들이 100여마리라면 자연상태 그대로 둬도 근친교배에 의해 자연멸종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재 전세계 해양포유류연구자들이 이곳 러시아 사할린섬에 나타난 한국귀신고래를 주목하고 있다. 자연사에 한번 멸종된 동물이 다시 나타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왜 한국귀신고래인가
귀신고래는 고래 중에 가장 먼거리를 회유한다. 여름이면 북쪽 고위도로 올라가 주로 먹이를 먹고 겨울이면 남쪽 저위도로 내려와 번식을 한다. 캘리포니안 귀신고래는 멕시코의 서쪽, 캘리포니아반도에서부터 북쪽 베링해와 축치해까지 회유를 하는데 왕복거리만 무려 17,000~18,000km에 이른다. 한국귀신고래의 경우, 우리 남해에서 번식하고 여름이면 북쪽 오호츠크해까지 회유를 한다. 생물의 경우, 통상 그 번식장을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는데 한국귀신고래는 한국바다에서 번식하기 때문에 한국귀신고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인 동물학자이자 탐험가인 Roy Chapman Andrews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1920년대에 중국내륙과 고비사막 등지에서 세계 최초로 공룡화석과 공룡알을 발견해 일약 세계적인 고고학자가 된 그는, 영화‘인디아나 존스’의 실제모델이기도 했다. 1910년대에 그는 이미 고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당시 일본 포경선을 타고 연구를 하던 중, 한국바다에 산다는 ‘devil fish'라는 고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고 마침내 1912년에 그 고래를 찾아 당시 일본의 포경기지였던 울산의 장생포로 오게 된다. 어느 추운 겨울날, 포경선에 잡혀온 한마리의 고래를 선창가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귀신고래였던 것이다. 무려 1년이 넘게 귀신고래를 연구한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14년에 귀신고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논문이, 당시에 고래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논문으로서 대히트를 치게 된다. 이 논문에서 그는 귀신
고래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두 계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평양 서쪽에 존재하는 계군을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specimens)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로 모든 학자들은 우리 바다를 회유하는 귀신고래에 대해 한국귀신고래라고 정식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세계 80여종이 넘는 고래가운데 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래는 이 고래가 유일하다. 지리산 반달곰도, 백두산 호랑이도 소중하지만 우리 동해 바다에 세계인이 인정하는 ’한국‘귀신고래가 존재했었고 그리고 지금도 회유해 온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